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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독후감 – “나는 누구인가, 복제된 나와의 공존은 가능한가”

40대후반직딩 2025. 3. 31. 15:50

에드워드 애슈턴의 SF 소설 『미키7』은 독특한 설정과 유쾌하면서도 철학적인 접근으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소모품’이라는 전무후무한 직업을 맡은 주인공 미키7은, 인간이 지구 밖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려는 극단적인 개척 상황 속에서 무한히 복제되며 죽음을 반복하는 존재다. 이 소설은 단순한 우주 탐사 이야기라기보다, 정체성과 존재, 생명과 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사유가 담긴 SF로 읽힌다.

 

죽음을 반복하는 존재, ‘소모품’의 삶

이야기의 배경은 혹한의 개척 행성 ‘날레인’이다. 인간들은 이 행성에 정착하기 위해 다양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그중 가장 위험한 일들은 ‘소모품’이라 불리는 존재에게 맡긴다. 미키7은 바로 그 ‘소모품’이다. 죽더라도 생물학적 육체와 뇌의 백업 데이터를 바탕으로 복제되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존재,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정식 인간이 아니라 죽어도 아쉬워할 이 없는 존재다.

미키의 삶은 “재생 가능한 인간”이라는 말로 단순화되지만, 그는 똑같은 기억과 감정을 지닌 ‘나’로서 계속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든지 폐기될 수 있는 존재이며, 스스로도 자신의 삶에 의문을 갖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라지는 건 두렵다. 내가 아니게 되는 것, 그게 진짜 두렵다.”

 

이 대사는 미키라는 인물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존재임을 명확히 드러낸다.

‘미키8’의 등장, 정체성의 위기

미키7은 어느 임무에서 실종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지만, 이미 그의 다음 버전인 ‘미키8’이 생성된 상황을 맞닥뜨린다. 이 설정은 이 소설의 핵심 갈등을 유발한다. 동일한 기억,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두 사람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가? 누가 ‘진짜’ 미키인가?

두 미키는 같은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지만, 공존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는 하나만이 ‘진짜’로 인정받을 수 있다. 미키7은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미키8과 함께 살아가야 하며, 이 과정에서 복잡한 갈등과 협력의 양상이 펼쳐진다. 둘은 서로를 죽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상대방이 없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 설정은 단순히 SF적 상상력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곧 현대 사회에서의 자아의 복제, 인공지능, 의식 이전 같은 실제 논의되는 주제들과 맞닿아 있으며,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유머러스한 톤 속에 감춰진 묵직한 질문

『미키7』은 주제를 무겁게 끌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미키의 경쾌한 1인칭 시점은 작품을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가볍게 만든다. 미키는 종종 자조적인 유머를 구사하며, 자신이 겪는 상황을 블랙코미디처럼 그려낸다.

“내 직업은 죽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죽는다. 그리고 다시 살아난다. 이게 대단한 일일까? 대부분은 나를 그냥 소모품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자조적인 문장은 작품이 다루는 철학적 질문을 보다 쉽게 흡수하게 해준다. 그의 담담한 태도는 오히려 독자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그는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감정과 존엄을 간직하고 있고, 그 점이 바로 독자로 하여금 미키에게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다.

인간의 가치, 존재의 의미

『미키7』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복제 인간’이라는 소재를 단순한 SF적 장치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존재론적 질문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기억인가? 신체인가? 사회적 위치인가?

또한 이 소설은 생명 윤리의 경계를 묻는다. 반복 가능한 인간이 있다면, 그의 생명은 기존 인간과 같은 존엄을 가질 수 있는가? 인간을 '유지보수 가능한 도구'로 여기는 이 사회의 구조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 노동의 비인격화와도 닮아 있다.

작중 인물들은 미키의 존재를 점점 의식하게 되며, 그를 단순한 소모품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이는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쉽게 시스템 속에서 객체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개인의 자아와 감정이 결국 존재의 가치를 증명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결말과 여운

결말에 이르러 미키7과 미키8은 서로를 완전히 제거하기보다는 공존의 방식을 모색하게 된다. 이는 실로 놀라운 전개이며, 인간이 가진 협력의 본능, 그리고 자아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두 미키는 결국 동일한 자아의 또 다른 얼굴이며, 그들이 서로를 인정하는 과정은 곧 자아의 확장을 의미한다.


📘 맺으며

『미키7』은 단순한 복제 인간 이야기를 넘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반복되는 죽음과 삶, 복제와 자아, 시스템과 인간성의 경계 위에서 미키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 나간다.

작품은 철학적인 주제를 유쾌하고 속도감 있는 서사로 풀어내면서, 독자에게 지적 자극과 감정적 공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SF라는 장르 안에서도 보기 드문 “가볍지만 깊은” 작품으로, 기술 발전이 인간의 정의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흥미롭게 사유하게 만든다.

 

『미키7』은 우리에게 묻는다. 복제된 존재가 있다면, 그중 진짜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질문에 정말 정답이 필요하기는 한가?